REVIEW :: 에쿠우스
Posted at 2010/01/03 00:21// Posted in CONTEMPORARY
2009년의 마지막날 미치듯이 추워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 그날 백만년 만에 본 연극 에쿠우스. 그날 출연은 조재현 + 류덕환. 예매를 하신 분께서 정태우 "동생"과 오래전에 오랫동안 친구였었었었었기에 류덕환을 초이스 한 것이라고 한다. 식상...하다던가 익숙...하다던가. 아무튼.
대략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한줄로 요약하면 말을 숭배하는 한 소년의 싸이코짓을 정신과 의사가 다루어 주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당신의 ‘에쿠우스’는 무엇인가?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는 아이들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개성을 파괴하는 자신의 의료행위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던 중 말 6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알런 스트랑을 치료하게 되면서 그 회의감이 마침내 폭발한다. 17세 소년 알런의 이런 잔혹한 행위에 대한 원인을 밝혀가는 과정에서 다이사트는 부모의 왜곡된 사랑과 사회적 억압에 짓눌린 한 소년의 뜨거운 내면을 마주하게 되고, 말에 대한 열정과 원시적 욕망으로 가득 찬 소년을 깊이 동경하게 된다. 하지만 ‘비정상’인 소년을 치료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의 압박감에 괴로워하고, 결국 소년의 행동의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를 시작하지만 그 자신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출처 : 연극열전 공식 홈페이지 http://www.thebestplay.co.kr/ ]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부부와 스트랑 부부의 공통적인 불화의 원인은 종교적 갈등이다. 다이사트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신봉하나 그의 부인은 철저한 기독교 신자로 그의 신념을 무시한다. 마찬가지로 알런 스트랑의 아버지는 무신론자이며 부인은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 서로의 종교적 신념을 경멸한다.
그러나 알런 스트랑의 종교는 말(에쿠우스)을 숭배하는 원시적 토테미즘의 형태를 취한다. 그것은 그 스스로가 선택한 '신' 으로 가장 원초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푸코식으로 풀어 나가면 그의 믿음, 즉 에쿠우스는 "규율적 권력"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으로 "비 이성"인 상태인 것이다. 종교(기독교)는 사회-권력의 헤게모니를 획득한 "주어진" 것이다. 반면 에쿠우스는 권력에 의해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소위 말하는 보편적 이성 상태에서 벗어난 비정상의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말을 숭배하는 알런 스트랑의 "비 정상적" 믿음은 결국 말의 눈을 찌르는 행위로 파국에 치닫게 된다.
그러나 다이사트는 알런 스트랑의 그러한 믿음을 흠모한다. 알런 스트랑을 데리고 온 판사는 그가 정상적인 아이가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다이사트는 정상과 비 정상의 구분 자체에 의문을 표하며 사회, 즉 권력이 승인하는 정상의 상태가 진정 행복한 것인지 자문한다.
푸코는 개인을 규율이라는 권력의 특수 기법이 만들어낸 존재로 규정한다. 즉, 인간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의미 창출의 주체가 아니라 권력-지식이 연계한 담론 구조가 만들어낸 생산물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제도적 복합체에 합당한지의 여부가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비정상 - 알런 스트랑의 원시적 종교 신념으로의 에쿠우스 - 은 가장 주체적인, 가장 개인적인 욕망의 산물이다. 그것은 사회 권력의 유폐적 그물망에서 벗어나 가장 원초적인 자아의 표현인 셈이고 다이사트는 그것을 갈구 하는 것이며 자신의 치료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출처 : 연극열전 공식 카페 http://cafe.naver.com/thebestplays]
하지만 다이사트가 갈구한 알런 스트랑의 원초적 믿음 - 에쿠우스 - 가 과연 옳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향일까? 알런 스트랑의 믿음, 에쿠우스는 물론 비 정상적 행위 (밤에 말과 함께 그만의 종교 의식을 치룬다거나) 로 표출되기는 하였으나 마굿간에서 함께 일하는 "질"을 만나지 않았다면 말의 눈을 찌르는 파국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알런 스트랑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의미 할 지도 모르겠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티비 조차 허락치 않으며 그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어머니가 이야기 해 준 성경 구절이 전부다.
다이사트는 스트랑에게 섹스에 대해 얼마나 알려주었냐고 부부에게 묻는다. (이 연극은 꽤나 프로이트 - 정신 역동적 치료 과정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난처해 하며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 해 주었다고 답한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섹스 역시 다이사트 부부와 스트랑 부부의 공통적 문제이다. 두 부부 모두 섹스리스 커플이다. 다이사트는 목석과 같은 여자와 살고 있는 자신의 고통을 판사에 호소하며 스트랑의 아버지는 부인 몰래 포르노 영화관을 찾으며 성욕을 해결한다.
여하튼, 어느날 질이 스트랑을 유혹해 포르노 영화관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스트랑은 그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왔음을 함구하기를 요청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질은 그를 마굿간으로 유혹하지만 스트랑은 말들 - 그가 숭배하는 에쿠우스 - 가 자신을 지켜 보고 있다며 과민 반응을 보이며 결국 삽입에 실패한다.
그는 자신의 일련의 행위 - 성 행위와 관련된 - 를 에쿠우스(말들)이 지켜 보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크나큰 죄악으로 간주하며 괴로워 한다. 그리고 그는 에쿠우스의 눈을 찌름으로서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연극은 또 다시 의문을 제기한다.
다이사트 부부와 스트랑 부부와 마찬가지로 알런 스트랑 역시 거세된 존재라는 것이다. 전자가 외부 권력에 의한 (종교적 갈등) 섹스리스라면 후자는 자신의 자아가 만들어낸 종교적 신념에 의한 섹스리스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다이사트가 흠모하던 알런 스트랑의 믿음 역시 궁극적인 지향점 - 진정 자유로운 인간 - 이 될 수 없음을 뜻한다. 이작품은 결국 선택은 관객의 몫이며 그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아 또 야심차게 시작한 리뷰는 소화 불량으로 인하여 용두사미로 마무리 되는구나. 아무튼 다소 뻔한 주제, 그러나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주제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모 일간지 기자는 리뷰에서 "말" 에만 정신 팔린 관객들에 대해 비판을 던지고 있는데 (엄청난 근육질) 운동은 좀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긴 하나 너무 과하게 몸들이 좋으시더라. 나와는 백만광년 떨어진 이야기랄까 (..)